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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공공차 작성일21-01-11 14:51 조회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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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에 하천 얼며 '위험한' 겨울 놀이 속속 목격…"위반시 과태료"



자동차 썰매 '위험'
[연합뉴스 자료사진]


(전주=연합뉴스) 나보배 기자 = "한 때 '자동차 눈썰매'가 재미있는 놀이로 인식되기도 했지만, 위험하니 절대 따라 해서는 안 됩니다."

북극발 한파로 많은 눈이 내리고 하천이 얼어붙으면서 '자동차 눈썰매' 등 위험한 행위가 이어져 주의가 요구된다.

11일 내장산국립공원 사무소에 따르면 전날인 10일 전북 정읍시 내장산 제4주차장으로 차량 10여 대가 몰려와 '자동차 눈썰매'를 탔다.

자동차 눈썰매란 자동차에 긴 줄로 눈썰매를 매달아 끄는 행위를 말한다.

내장산국립공원 제4주차장은 비포장상태로 면적이 약 7만㎡에 달해 자동차 눈썰매를 타기 좋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10여 년 전부터 인근 주민들이 찾고 있다.

자동차 눈썰매는 자동차가 썰매와 부딪치거나, 썰매 줄이 끊어져 썰매를 타던 아동이 자동차 밑으로 깔려 들어가는 등 사고가 날 가능성이 높다.

내장산국립공원 사무소는 사고 발생 위험 등을 이유로 지난 8일 자동차 눈썰매 금지 위반 시 3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현수막을 주차장 곳곳에 부착했다.

현장에선 계도 안내도 하고 있지만, 시민들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한다.

내장산국립공원 사무소 관계자는 "'개인의 자유인데 왜 썰매 타는 걸 막느냐'고 항의하는 분들이 있다"며 "여러 대의 차들이 썰매를 끌다 보면 뒤엉켜 사고가 날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에 눈썰매는 안전수칙에 맞게 즐겨달라"고 당부했다.


전주천에서 썰매 타는 사람들
[인터넷 카페 화면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60년 만의 강추위가 몰아친 전주에서는 하천 곳곳이 얼어붙으면서 얼음 위를 걷거나 썰매를 타는 시민들도 있었다.

한 온라인 카페에는 지난 주말 동안 '언 하천에서 어른들과 아이들이 썰매를 타고 있는데, 보기만 해도 걱정된다'는 내용의 글이 다수 게시됐다.

이를 본 네티즌들은 '언 하천 위에서 놀아도 된다는 인식이 강해지면 아이들이 혼자 놀다가 물에 빠지는 사고라도 당할까 걱정된다', '얼음이 갑자기 깨지면 어떡하냐'는 등의 반응을 보이며 우려했다.

전주시청 관계자는 "아무리 단단하게 하천이 언 것처럼 보여도 얼음이 얇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절대 그 위로 올라가선 안 된다"며 "하천 주변에 눈이나 비가 올 때 출입을 금지한다는 표지판을 추가로 설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war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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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시청광장에 설치된 코로나19 임시 선별검사소에서 시민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검사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린 확진자가 매일 1000명씩 쏟아지면서 방역당국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임시선별검사소를 운영하며 신속항원검사를 도입했다. 감염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숨은 감염자'를 선제적으로 찾아내기 위한 조치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이달 4일 0시까지 수도권 임시 선별검사소에서 진행한 중합효소연쇄반응(PCR) 검사와 신속항원검사는 총 76만여건이며, 이 가운데 2174명이 확진 판정을 받아 양성률은 0.27%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 초기 초기 한국이 방역 모범국으로 꼽힌 이유로 신속하고 광범위한 PCR 검사가 가능한 의료체계를 꼽는다. 하지만 현재 활용되는 진단기술은 완벽하지 않다. 피검사자의 유전자(DNA)를 증폭시켜 코로나바이러스의 양성 대조군과 비교해 분석하는 PCR은 정확도가 높지만 결과가 나오는 데 최소 6시간이 걸린다. 검사량이 몰릴 경우 하루를 넘기기도 한다. 바이러스를 정제하고 증폭시키는 값비싼 장비도 필요해 현장에서 바로 할 수 없다.

진단키트에 항원(바이러스)을 인식하는 항체를 코팅해 검체와 반응시켜 감염 여부를 가리는 신속항원검사는 15~30분이면 양성 여부를 확인할 수 있지만 위양성(거짓 양성) 비율이 약 40%에 달해 정확도가 떨어진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불안한 일상에서 기존 기술보다 더욱 빠르고 정확한 진단기술의 필요성이 높아진 이유다. 특히 대다수 과학자들이 새로운 감염병이 언제든 출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어 진단기술은 백신과 치료제와 함께 인류가 감염병을 극복하는데 필수적인 기술로 꼽힌다.파워볼게임

국내에서도 PCR 수준의 정확도를 갖추면서도 30분만에 진단이 가능한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지난해 노벨 화학상을 안긴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활용한 진단 기술도 코로나19 극복에 활용되고 있다. 2021년 들어 더 정확하고, 더 빠른 감염병 진단기술의 진화와 이를 둘러싼 새로운 경쟁의 서막이 열리고 있다.

● 바이러스는 분자진단 사각지대...국내 연구진, PCR보다 빠른 기술 개발

분자진단은 세포 내에서 발생하는 분자 수준의 변화를 평가해 질환 여부를 판단하는 진단기법이다. 분자진단에서 분자는 보통 DNA나 DNA가 지닌 유전정보에 따라 필요한 단백질을 합성하는 데 관여하는 핵산인 RNA를 뜻한다. 이들은 질환을 판단하는 체내 지표인 ‘바이오마커’의 일종이다.

분자진단은 그동안 암이나 당뇨와 같은 대사질환에 주로 활용됐다. 식중독이나 감염질환의 경우 계절적 요인이 작용하거나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분야라는 이유로 연구투자가 집중되지 않아 ‘사각지대’로 불렸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상황이 급변하자 발빠르게 움직인 국내 연구진이 감염병 진단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분자진단 기술을 개발했다. 현재 가장 뛰어난 정확도를 지닌 PCR만큼의 정확도를 갖추면서 30분만에 진단이 가능한 기술이다.

정규열 포스텍 화학공학과 교수(왼쪽)와 이정욱 포스텍 화학공학과 교수. 포스텍 제공.
포스텍 화학공학과의 이정욱·정규열 교수 연구팀은 바이러스의 RNA로 신속하게 코로나19를 진단하는 기술(SENSR)을 개발해 지난해 9월 국제학술지 ‘네이처 바이오메디컬 엔지니어링’에 발표하고 현재 상용화를 진행하고 있다.

PCR은 피검사자의 DNA를 증폭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DNA를 증폭시키려면 바이러스 RNA를 DNA로 만드는 ‘역전사’를 거쳐야 한다. 역전사와 DNA 증폭이라는 두 번의 단계를 서로 다른 환경에서 거쳐야 한다.

이 기술은 PCR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RNA를 DNA로 바꾸는 역전사 과정을 생략한다. 대신 코로나19 바이러스의 RNA에만 붙는 분자, 피검사자의 검체와의 반응에 필요한 효소를 통해 바이러스 RNA가 있을 경우에만 반응해 형광색을 띠도록 설계했다. 실제 환자 샘플과 반응시켰을 때 30분만에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검출하는 데 성공했다. 정확도는 PCR과 유사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정 교수는 “PCR처럼 표준진단 체계에 포함될 정도의 상용화에 도달하려면 정확도·민감도에 대한 대규모 검증이 필요하다”며 “상용화되면 코로나19를 비롯해 감염병 분자진단 분야에서 기술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 지난해 노벨화학상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로 5분만에 진단하는 기술도 등장

지난해 10월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 개발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직후 수상자 중 한명인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 연구진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5분만에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확인하는 진단기술을 개발하고 논문 사전 공개사이트 ‘메드아카이브’에 공개했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특정 DNA 염기를 찾아가 원하는 부위를 잘라내는 기술이다. 난치성 유전질환 치료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연구진은 코로나19 바이러스 RNA를 찾아가는 가이드RNA에 형광입자를 붙였다. 가이드RNA가 바이러스 RNA와 결합할 경우 RNA가닥을 효소로 잘라낸다. 이때 잘린 RNA 가닥에 레이저를 비춰 빛이 나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방식이다. 연구진은 “코로나 환자 검체 5개를 모두 5분만에 양성으로 판정했다”며 “유전자 증폭이나 고가의 장비가 필요없어 획기적”이라고 밝혔다.

[ 포항=김민수 기자 r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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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정이 아닌 검토단계'일 뿐이라는 현대자동차그룹과 애플 간 합작에 현대자동차가 시총 4위에 올라섰다. 미래차 패권을 노리고 있는 현대차 입장에서는 이번 협업이 그만큼 의미가 큰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현대차가 주도적으로 이끄는 분위기지만 앞으로 애플이라는 기업이 자동차 시장에 등장하면서 어떤 변수로 작용할 지 모른다는 이유에서다. /사진=로이터
'확정이 아닌 검토단계'일 뿐이라는 현대자동차그룹과 애플의 합작 소식에도 현대자동차가 시총 4위에 올라섰다. 미래차 패권을 노리는 현대차 입장에서는 이번 협업이 그만큼 의미가 큰 것으로 해석된다.

1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36분 기준 현대자동차는 코스피 시가총액 4위(삼성전자우 제외)로 뛰어올랐다.

지난 8일 현대차와 애플이 합작해 전기차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19%넘게 오른 데 이어 이날(11일)에도 6%넘게 올랐다. 이 같은 시장의 반응은 현대차와 애플 간의 협업은 투자자들 사이에서 변화를 이끌어낼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차+애플카, 시나리오는
현대차그룹 설명에 따르면 애플의 협력 제안한 것은 맞지만 제안을 검토 중인 단계일 뿐이라는 신중한 입장을 보인다. 하지만 현대차와 애플의 합작이 성사될 경우엔 전기차 플랫폼 E-GMP가 주도적인 역할을 할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E-GMP 공개 당시 비어만 사장은 "현재 E-GMP를 공유하는 것에 대해 논의할 시점은 아니다"면서도 "협력에 대한 문의는 받았다"고 했다. 사실상 플랫폼 공개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자동차 산업은 한 대의 자동차를 개발하려면 연구개발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모된다. 따라서 자동차 한대를 개발하기 위해 이 비용을 절감하는 게 주요 과제 중 하나다.

전기차 플랫폼인 E-GMP의 특징은 자유롭고 유연한 설계가 가능한 데 있다. 여러 차종에 현대차의 플랫폼이 공유될 수 있다는 얘기다. 단한번도 자동차를 만든 적이 없던 애플도 손 쉽게 자동차에 진출할 수 있다는 의미다. 애플에 현대차의 플랫폼을 공급하게 될 경우 향후 애플의 자동차 판매량에 따라 현대차의 실적도 퀸텀점프가 가능하다.

KTB투자증권은 "현대차와 애플의 제휴는 단순 위탁생산이 아닌 양사에 시너지가 나오는 구조일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프로페시./사진=현대자동차

득보다 실?… 해석하기 나름
하지만 이면을 보면 득과 실이라는 갈림길에서 선뜻 예측하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한다. 애플은 현대차 외에도 여러 글로벌 자동차 회사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진 만큼 낙관하기 이르다는 평가다. 미래에는 현대차가 애플이라는 기업과 경쟁을 펼칠 수도 있어서다. 미래를 준비하는 두 기업은 이미 겹친 사업부문도 상당하다는 평.

애플은 현재 자율주행차에 탑재될 인공지능(AI)와 운영체제(OS), 배터리 등 미래차 기술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이는 현대차의 미래 모빌리티 비전과 유사하다.

현대차와 애플의 플랫폼 데이터 공유 문제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동안 애플은 스마트폰에 있어서도 구글의 안드로이드를 활용하지 않고 IOS를 고집해왔다. 애플이 현대차가 개발한 OS를 활용하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는 얘기다.

이 경우 데이터 수집에서 문제를 낳는다. 주행 데이터로 수집된 주변 환경과 자동차 조작 사항 등은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애플의 IOS는 애플만 활용할 수 있는 운영체제로 현대차가 애플로부터 데이터를 공급받지 못한 채 플랫폼만 공유할 수 있다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한달 내로 발표되는 협약이 중요하다"며 "현대차가 애플의 하청업체가 되는 그림이 아닌 양사 협업을 통해 OS문제 등을 해결해 양사 모두 득이되는 그림을 가져와야 한다"고 말했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이미 예견된 문제를 뛰어넘어 새로운 '딜'을 꺼낼 수 있다고도 본다. 업계 관계자는 "서로가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은 '서비스'에서 찾을 수 있다"며 "미래 모빌리티 서비스 기업으로 전환을 선언한 현대차와 새로운 시장에 진출할 애플은 이전에 없던 영역에서 시너지효과를 내려 할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지용준 기자 jyj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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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독립운동가④] 조선공산당 중앙집행위원 이준태(李準泰, 1892~1950)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이 세상에 나온 것은 1848년 2월이었고, 69년 뒤인 1917년 러시아에서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했다. 식민지 치하에 조선공산당이 창립된 것은 1925년 4월이었다. 조선공산당은 ‘조선혁명’의 과제를 민족해방혁명, 반제국주의 혁명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그것이 자기 과업을 수행하면서 독립운동에도 헌신한 이유였다.?

그러나 이들은 해방 후 38도선 이남에 친미 반공 국가가 세워지면서 잊히기 시작했다. 일제의 가혹한 탄압 아래서 이들이 벌인 계급투쟁도, 반제국주의 민족해방 투쟁도 이념 저편에 묻혀 버린 것이었다. 조선공산당 창당을 전후한, 이 잊힌 혁명가들의 삶과 투쟁을 돌아본다. <기자말>

[장호철 기자]

[사회주의 독립운동가①] 조선공산당 초대 책임 비서 김재봉
[사회주의 독립운동가②] 조선공산당 산하 고려공산청년회 책임 비서 권오설
[사회주의 독립운동가③] 제3차 조선공산당(안광천) 조직부장 김남수



▲ 이준태(사진)는 김재봉, 권오설과 함께 '풍산 트로이카'를 이루었으나 유일하게 서훈을 받지 못했다. 셋은 고비마다 핵심적 역할을 해 '풍산 트로이카'라 불리웠다.
ⓒ 국사편찬위원회


풍산 오미마을의 김재봉(1890~1944)이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 피압박민족대회에 참석한 것은 조선노동대회의 대표로서였다. 비록, 경북 안동 와룡 출신의 안상길(1892~1958)과 함께 임정 선전과 자금모금을 하다가 붙잡혀 6개월 징역을 살긴 했지만, 그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인 김재봉이, 내로라하는 조직의 대표들이 모인 극동 민족대회에 참석한 것은 일종의 '미스터리'(최백순, <조선공산당 평전>)였다.

대회 뒤, 치타와 블라디보스토크에 머무르며 이르쿠츠크파 공산당에 입당한 김재봉이 조선공산당 창당의 밀명을 띠고 15개월 만에 귀국한 것도, 1925년에 조선공산당 초대 책임 비서가 된 것도 그 미스터리의 연장선에 있었다. 경성공업전습소(경성고등공업학교의 전신, 뒤에 서울대 공대로 재조직)에서 공부한 뒤, 귀향해 강습소를 열었던 그가 국내의 대표적 노동단체인 조선노동대회 대표로 선임된 것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김재봉의 극동 민족대회행의 열쇠, 이준태

김재봉의 전격적 등장에 관해 속 시원하게 설명하는 자료는 찾기 어렵다. 최백순은 이러한 미스터리를 푸는 열쇠로 동향인 이준태를 제시한다. 풍산 우렁골(상리리) 출신으로 김재봉보다 2년 아래인 이준태는 김재봉과 경성공업전습소 동문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총독부 측량기사로 일하던 이준태는 김재봉과 함께 안상길을 만나 함께 일했지만, 구속은 피했다.

두 사람이 가입해 있던 조선노동대회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6장의 극동 민족대회 대표권을 배정받았는데, 그 마지막 한 장이 김재봉에게 돌아온 것이었다. 최백순은 조선노동공제회나 조선노동대회와 달리 사회주의자들이 주도권을 쥔 노동 대중 조직을 꾸리려 했던 이준태에게 이 모든 결정의 열쇠가 있으리라 추정한 것이다.

1920년께 안상길·김재봉과 함께 임정 일을 함께하기 이전에 이미 이준태는 서울에서 그 존재를 뚜렷이 하고 있었다. 그는 1920년 7월에 <동아일보>에 발표한 '학우회 주최 순회 강연 변사 제군'이라는 글로 청년들에게 민족 사랑을 요구하였다. 이듬해에는 여름방학을 맞은 학생들에게 '강연단을 조직하여 농촌으로 가라'는, 마치 1930년대의 '브나로드 운동'을 연상하게 하는 글을 <조선일보>에 기고했다.

이준태는 1920년에 노동운동 조직인 조선노동대회와 조선노동공제회에 참여하면서 사회활동을 시작했다. 최백순은 조선노동대회를 이끌던 안동 출신 사회주의자 노병희가 이준태와 '노동이라는 공통분모'로 알고 지냈을 것으로 보았다. 결국 갓 출옥한 김재봉에게 극동 민족대회행 대표권이 돌아가게 한 데는, 이준태의 역할이 있었다고 본 것이다.

이준태는 노동운동에 입문하면서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사회주의 운동이라는 사실을 내다보고 있었던 듯하다. 그는 1922년 1월, 김한(1887~1938, 2005 독립장), 신백우(1889~1962, 1990 애국장) 등과 서울에서 사회주의 사상단체인 무산자동지회에 발기인으로 참가하였다. 3월에는 무산자동지회와 신인동맹회가 통합한 무산자동맹회의 상무위원이 되어 기관지 <무산자> 발행에 힘을 보탰다. 파워사다리


▲ 이준태의 일제 감시대상 인물 카드. 깊숙한 눈길로 응시하는 것은 역사일까.
ⓒ 국사편찬위원회


이 무렵 이준태는 김한·신백우 등이 활동하던 '조선공산당'(1925년 창당된 조선공산당과는 다름. '중립당')'에 가담하였다. 10월에는 조선노동공제회가 분화한 혁명적 성격의 노동단체 조선노동연맹회에도 참여했다. 1923년 3월 서울에서 조직된 사회주의 청년단체 전조선청년당대회에도 개인 자격으로 참가하였다.

이처럼 이준태를 비롯한 국내 사회주의자들은 활동의 범주를 넓혀 가면서 사회주의 지향을 명확히 하며 조선공산당 창당의 기반을 조성하고 있었다. 그 결과, 1923년 5월, 김재봉이 15개월 만에 코민테른 국내부 책임자가 되어 러시아에서 귀환한 뒤, 곧바로 꼬르뷰로(코민테른 고려총국) 국내부가 조직될 수 있었다.

풍산소작인회와 조선공산당 2차당 차석 비서

그해 7월, 서울에서 고무공장 여성 노동자들이 임금투쟁을 전개하자 이준태는 윤덕병·김남수 등과 함께 '고무 여직공의 동맹파업 전말서'라는 선전문을 작성, 전국의 노동단체에 배포하였다. 이것이 추후 문제가 되어 그는 윤·김과 함께 출판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았다.

같은 달, 이준태는 사회주의 연구 목적의 '신(新)사상연구회'의 결성에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신사상연구회는 이듬해 11월, 마르크스의 생일에서 따온 '화요회'로 이름을 바꾸면서 그 성격을 분명히 했다. 1923년 11월, 고향으로 내려온 이준태는 권오설 등과 함께 소작농뿐 아니라 자작농·중소 지주·진보적 청년 지식인들이 참여한 풍산소작인회를 조직했다.

1925년 1월에는 안동에서 화요회의 지회 격인 '화성회'를 조직하고 집행위원이 되었으며, 같은 달 조선공산당 창립대회를 위한 준비그룹이 발행하려는 사회주의 잡지 <화화(火花, 불꽃)>의 동인으로 참가하였다. 2월에는 화요회에서 사회운동의 조직적 통일과 기본방침을 토의하고자 개최한 전조선 민중운동자대회의 안동 준비위원으로 선정되었다.

1925년 4월 17일 조선공산당(조공)이 서울에서 창립되었을 때, 이준태는 안동에서 풍산소작인회와 화성회 활동에 주력하고 있었다. 8월에 풍산소작인회는 읍내에 풍산 소작인회관을 준공하고 그 낙성식을 성대하게 베풀었다. 5000여 명이 참석한 낙성식에서 이준태가 식사(式辭)를 맡았고, 안동청년연맹의 김남수가 축사를 했다. 식이 끝나고 수천 명 군중은 적색기와 악대를 앞세우고 시가지를 누볐다고 전한다.

서울에서 당이 창당되었는데도 이준태가 안동에 머문 것은 이러한 지역 활동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 '예비 간부를 중앙에서 분리'(김희곤)한 것으로도 추정된다. 그해 8월에 예천의 보수 단체 회원 수천 명이 형평사 예천 분사를 기습한, 이른바 '예천 사건'이 일어났다. 이준태는 이 사건에 대응하여 안동 12개 단체가 공동으로 꾸린 연합 회의의 집행위원으로 참여하였다.

11월에는 '도산서원 소작인 태형(笞刑) 사건'이 일어났다. 서원에서 1920년에 조선총독부가 폐지한 형벌을 소작인에게 가한 사건에 안동의 사회단체들은 경악했고, 이에 도산서원 철폐 운동으로 맞섰다. 풍산소작인회에서는 별도의 전문위원회를 구성했을 때 이준태 이름은 13명 명단의 맨 앞에 있었다.


▲ 조선공산당 창당을 전후한 주역들인 김재봉(풍산 오미리), 이준태(풍산 상리리), 권오설(풍천 가곡리)을 모두 안동시 풍산 주변 출신이라 '풍산 트로이카'를 이루었다.
ⓒ 장호철


이준태가 다시 상경한 것은 11월 '조선공산당 제1차 검거사건'이 발생하면서였다. 조공 산하 고려공산청년회(공청) 책임 비서 박헌영 내외 등 당원 1백여 명이 검거된 조직의 위기에 김재봉이 이준태를 소환한 것이다. 김재봉은 강달영을 책임 비서로, 이준태·홍남표·이봉수·김철수 등 5명에게 조직을 맡기고 피신하다가 체포되었다.

이듬해(1926) 2월, 강달영의 2차당에서 중앙집행위원 이준태는 비서부 차석과 당 교섭 대표자로 선임되었다. 2차당에는 동향 후배 권오설도 고려공산청년회 책임 비서로 참여했는데, 이들은 2차당 조직 과정에서 중추적인 구실을 했다. 4월에 순종이 사망하자, 공청의 권오설은 인산일에 민중항쟁을 기획하였지만, 사전에 기밀이 새어 조공은 당원 1백여 명이 잡히는 등 치명상을 입었다. 이것이 '조선공산당 제2차 검거사건'이다.

권오설에 이어 이준태도 일경에 체포되었다. 길고 지루한 공판이 이어지면서 이준태와 권오설 등 5명의 피고인은 일제 경찰을 '폭행과 학대, 직권 남용'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1928년 2월에 이준태는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이준태는 1930년 10월 출옥해 풍산 우렁골로 돌아왔다. 김재봉과 마찬가지로 일경의 감시로 나들이도 자유롭지 못해 그는 칩거 생활을 이어갔다. 풍산 읍내에 잡화점을 열었던 이준태는 해방이 되자, 셋째 아들에게 가게를 맡기고 서울로 갔다.

이후 이준태의 행적은 거의 알려진 게 없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그가 1945년 12월 전국 농민조합총연맹 결성대회에 안동군 대표로 참가, 검사 위원으로 선출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일가의 비극과 '풍산 트로이카' 중 유일한 미서훈

경기도 양주에 있는 이씨 문중 재실에서 머물다가 이준태가 귀향한 것은 6·25전쟁이 일어난 뒤였다. 그는 9월 국군의 북진을 따라 북상 길에 올랐다는데, 그것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그는 경북의 산악지대를 지나다가 공습으로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월북설도 있긴 하지만, 그가 평양에 나타났음을 전하는 자료는 전혀 없으니 믿기 어렵다.

그의 종적이 끊긴 뒤, 가족들에게 남은 것은 고초뿐이었다. 이준태 아내는 경찰에 끌려가 조사를 받아야 했고, 맏아들은 1953년 1월 마을 근처에서 우파 세력에게 총살되었다. 둘째 아들은 서울에 살다 피난길에 올랐다가 한강 다리 폭파로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풍산에서 잡화점을 경영하던 셋째는 부친과 관련한 주변의 신고로 곤욕을 치르다 집을 나갔다. 한 집안이 풍비박산난 것이다.

안동 출신의 사회주의자들,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의 주역들인 김재봉(애국장), 권오설(독립장), 김남수(애족장) 등은 2005년에 서훈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과 함께 핵심적 역할을 해 '풍산 트로이카'를 이루며, 조선공산당 창건 전후 당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중요하게 활동했던 이준태만이 서훈에서 제외되었다.

사회주의자로 독립투쟁에 참여한 이들 가운데, 조선공산당 경북도기관 책임 비서 안상길(1892~1958), 권오설의 동생으로 <해방일보> 주필과 사장을 지낸 권오직(1906~1953), 조선노농총동맹 중앙집행위원 안기성(1898~?) 등은 해방 후 북으로 갔다. 그러나 북으로 가지도 않았고, 해방 정국에서 좌익 활동도 거의 드러나지 않은 이준태가 이렇게 잊힌 존재가 된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 경북 안동 풍산읍 상리리 364번지, 새로 단장한 이준태의 생가. 입구 울타리 게양대에 태극기가 무심히 휘날리고 있다. 집 오른쪽 측면에 따로 문을 달아 처마에 그의 호를 딴 ‘一烽齋(일봉재)’라는 편액을 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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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가 오른쪽 칸의 일봉재 안에 모신 이준태의 흉상. 그 위에 낡은 태극기가 걸렸다. 낮과 밤에 두 차례나 찾았지만 주인을 만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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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 풍산읍 상리리 364번지 이준태 생가는 퇴락을 거듭하다가, 최근 손자며느리가 묵은 집의 대들보만 살리고 새로 단장한 집을 지키고 있다. 집 오른쪽 측면에 따로 문을 달아 처마에 그의 호를 딴 '一烽齋(일봉재)'라는 편액을 걸어놓았다. 일봉재에는 '항일 애국지사 일봉 이준태 상'이라 새긴 흉상이 놓였고, 그 위로 낡은 태극기가 걸려 있다.

태극기는 집 출입구 쪽 울타리 게양대에도 걸려 있다. 무심하게 휘날리는 깃발은 마치 풍산 트로이카 중 유일하게 서훈을 받지 못한 데 대한 후손들의 항의처럼 보인다.

청년 이준태가 열망한 혁명과는 무관하게 그는 이 땅을 떠나지 않았다고, 대한민국을 부정하지는 않았다는 무언의 시위처럼. 그러나 일봉재에 모신 흉상과 일제 감시대상 인물 카드 속 이준태의 깊숙한 눈길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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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화면 캡쳐


[OSEN=장우영 기자] 개그맨 이용식이 40kg을 감량한 딸 이수민에 대한 애정과, 김학애 가족과 ‘사돈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난 11일 방송된 JTBC ‘1호가 될순 없어’에서는 임미숙-김학래 ‘숙래부부’가 아들 동영이와 함께 오랜 친분이 있는 이용식의 집을 방문했다.

이용식의 딸 수민이와 동영이를 사윗감, 며느릿감으로 탐내며 어른들이 사랑으로 몰아가는 가운데 부족한 재료를 사러 나간 수민이와 동영이의 설레는 투샷이 보는 이들의 심박수를 증가시켰다. 여기에 스튜디오에서 이를 지켜보는 또 다른 며느릿감 장도연이 적재적소에서 코믹한 리액션으로 재미를 끌어올렸다.

의도치 않게 상견례처럼 식탁에 마주 앉은 두 가족은 임미숙의 깨알 상황극과 동영이의 스윗한 매너, 오고 가는 유쾌한 대화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더불어 클래식과 트로트를 넘나드는 수민이의 첼로 연주와 노래에 맞춰 춤추는 임미숙, 김학래의 모습이 해피바이러스를 퍼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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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후 OSEN과 통화에서 이용식은 “딸바보 용어의 시작이 내게서 됐다. 결혼해서 1년 만에 아이를 얻는 것과,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으려던 때에 얻은 아이에 대한 애정과 생각은 천지차이다. 8년 반 만에 얻은 아이라 난 딸만 바라보는 딸바라기이다. 처음에는 ‘딸바보’가 내 딸이 바보라는 말로 오해해 싫었었는데, 이후 화기애애한 가족과 딸을 아끼는 아빠를 ‘딸바보’라고 하더라. 딸바보의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된 후로는 딸을 더 사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용식의 딸 이수민은 40kg을 감량했다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시청자들은 ‘긁지 않은 복권이었다’고 말하기도. 이용식은 “복권이 될지 안될지 모르니 떨리는 마음으로 갖고 있었는데 어느날 느닷없이 긁어볼까 해서 긁었더니 당첨됐다. 처음에는 내 모습이 사라져서 아쉬운 것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용식은 “방송을 함께 본 후 30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뚱뚱했을 때는 아빠와 닮아서 알아봤지만 이제는 ‘이용식의 딸’, ‘40kg 감량’ 등이 붙기 때문에 올바르고 똑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며 “그랬더니 딸이 ‘아빠와 엄마의 말을 듣고 나니 체중은 무거워지지 않았지만 마음이 40kg 더 무거워졌다’고 말했다. 내 말을 다 알아듣고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용식은 딸 이수민과 김학래의 아들 김동영의 ‘하트 시그널’에 대해서는 “아무리 부모가 나선다고 해도 당사자들의 눈높이가 서로 맞지 않으면 이뤄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나는 결혼이 운명, 필연이 아닌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김학래의 아들과 그 기적을 이루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의 마음이 맞다면 전폭적으로 밀어주고 싶다”고 말했다.홀짝게임

이어 이용식은 “임미숙과 김학래의 심성을 알기에 만약 사돈이 된다고 하면 딸을 힘들게 하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한다. 임미숙이 정말 내 딸을 예뻐하고, 그 집안과 종교도 같다. 딸이 남자를 만날 때 종교가 같았으면 한다고 하는데 95%는 맞아 떨어진 셈이다. 나머지 5%는 아이들의 마음이다”고 이야기했다.

끝으로 이용식은 “내 삶의 모토가 입장을 바꿔놓고 살자이다. 개그맨 후배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아픈데, 코로나19 시국이 좀 나아지면 함께 방송, 유튜브, 라이브 커머스 등을 해보고 싶다. 특히 ‘웃고 싶을 땐 어디를 보면 된다’라는 생각을 가지실 수 있도록 개그맨 선배들과 후배들이 힘을 합쳐 새로운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elnino8919@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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