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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공공차 작성일20-09-22 12:42 조회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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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모빌리티가 운영하는 가맹택시 '카카오T 블루'에 대해 이용자 10명 중 7명은 긍정 반응을 보였다.

22일 카카오모빌리티 자회사 KM솔루션(대표 류긍선)이 '카카오T 블루' 서비스 1주년을 맞아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용자 73.8%는 서비스에 '만족', 24.2%는 '보통', 2%는 '불만족'한다고 응답했다.

20대 73.5%, 30대 70.3%, 40대 79.8%가 만족한다고 응답해 연령대별로 고른 결과를 보였으며, 남성(72.3%)보다는 여성(75.7%)의 만족도가 3.4%p 높았다.

서비스 만족 요소(중복 응답)는 △앱 자동결제의 편리함(58.2%) △호출 후 자동 배차(56%) △차량의 청결함과 쾌적함(52%) △기사 친절도(49.4%) 순으로 나타났다. 20대 이용자들이 △앱 자동결제의 편리함과 △호출 후 자동 배차(각 59.2%)에 높은 만족도를 보인 반면, 40대 이용자들은 △앱 자동결제의 편리함(61.3%)과 △기사 친절도(58.8%)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 소수 응답으로 '불필요한 대화가 없다'는 점도 만족 요소 중 하나로 꼽혔다.

서비스 불만족 요소(중복 응답)는 △이용 가능 차량 부족(40.2%) △기사 친절도(7.4%) △운행 경로(6.0%) △차량 내부 상태(5.6%) △앱 사용의 불편함(4.6%) 순으로 나타났다. 카카오 T 블루는 이용 가능한 차량이 주변에 있을 때만 호출이 가능하다.

카카오 T 블루에 기대하는 점을 묻는 질문에서도 '이용 가능 차량 확대'(52.2%)를 선택한 응답자가 가장 많았다. △충전 케이블 외 편의 서비스 및 콘텐츠 확대(22.8%) △차량 내-외관 디자인 다양화(10.2%) 순으로 응답했다.

응답자의 62.6%는 카카오 T 블루를 월 1회 이상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 1회 이상 이용했다는 응답자도 23%에 달했다.

이번 조사는 KM솔루션이 오픈서베이에 의뢰해 수도권 거주 20세~40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카카오 T 블루 탑승 경험자를 대상으로 조사했으며, 95% 신뢰수준에 오차범위는 ±4.38%p이다.

이형두기자 dudu@etnews.com
1922년 5월 19일



플래시백
태양을 품에 안는 꿈이었다니 태몽은 아주 상서로웠습니다. 하지만 1861년 나고 보니 아버지는 청주 아전이었고 어머니는 첩이었죠. 지방 말단관리의 서자였습니다. 태몽 덕인지 아이는 의지가 남달랐죠.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형을 형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서자는 일곱 살 때부터 스스로 호부호형(呼父呼兄)을 하지 않았답니다. 아버지의 회초리가 날아왔지만 끝내 버텼죠. 갈수록 의협심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17세 때 괴산에서 어사(御使)가 말꼬리에 상투를 묶어 끌고 오는 피투성이 역졸을 목격했죠. 소년은 낫으로 말꼬리를 잘라 역졸을 구하고 마부를 쫓아버렸죠. 어사요? 목숨보다 귀하게 여긴다는 유서통(諭書筒)을 소년이 빼앗아 연못에 던져 버리니까 줄행랑을 놓았다죠. 유서(諭書)는 임금이 내린 군사 동원 명령서죠.

소년은 의암(義庵) 손병희(孫秉熙)입니다. 서자 신세에 체념해 글을 멀리한 채 건달패 우두머리로 이름이 높았다죠. 여기에 마침표를 찍어준 것이 동학(東學). 패거리와 술, 노름을 단번에 끊었죠. 21세 때였습니다. 매일 ‘지기금지원위대강(至氣今至願爲大降)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 영세불망만사지(永世不忘萬事知)’ 주문을 3만 번 외우고 짚신을 두 켤레씩 만들며 도를 닦았답니다. 3년간이나요. 2세 교주 해월(海月) 최시형(崔時亨)은 손병희를 만나보고선 참을성을 시험했다죠. 초겨울 함께 기도드리러 가서는 솥을 거는 틀을 뜯어 고치라고 했습니다. 기껏 해놓으면 “너무 깊다” “비뚤어졌다”라며 번번이 퇴짜였다죠. 무려 일곱 번을요. 그래도 군소리 없이 “됐다!”라고 할 때까지 손을 불어가며 일했답니다. 합격이었죠.


⓵은 의암 손병희 초상화이고 ⓶와 ⓷은 손병희가 운명하기 직전 사진이다. ⓶에서 왼쪽에서 두번 째는 주치의, 그 오른쪽은 천도교 대도주 박인호, 그 오른쪽은 손병희의 부인이다. 가장 왼쪽은 손병희의 옥바라지와 간병을 도맡았다는 애인 주취미로 보인다. ⓶는 천도교 중앙총부 제공.


1894년 남접의 봉기로 갑오농민혁명이 일어납니다. 지켜보던 최시형이 마침내 함께 하라고 지시하자 손병희는 통령으로 북접을 지휘했죠. 남접은 녹두장군 전봉준이 이끌었고요. 그러나 동학농민군은 청군과 일군에 학살당하다시피 했고 손병희는 최시형을 모시며 피 말리는 도피생활을 했죠. 최시형은 1897년 손병희를 3세 교주로 임명한 뒤 이듬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동학 최고책임자가 된 손병희는 관군의 추격을 피할 겸 세계의 대세도 살필 겸 일본으로 갔죠. 거기서 권동진 오세창 박영효 등과 교분을 쌓고 조선을 개화시킬 방안을 찾습니다. 그 결과가 1904년 ‘갑진혁신운동’이었죠. 수십만 동학교도들이 한꺼번에 머리 깎고 검은 옷 입으며 민회를 구성해 개혁을 요구했습니다. 이마저도 관의 탄압으로 많은 교도들이 희생됐죠. 이용구가 배신해 일진회가 친일단체로 돌아선 뼈아픈 일도 이 무렵이었죠.

을사늑약으로 추격하던 관이 사라지자 손병희는 귀국해 동학을 천도교로 선포했습니다. 이용구 등 62명을 출교시키고 교도를 100만 명 넘게 늘려 위축된 교세도 되찾았죠. 교육으로 눈을 돌려 실력양성에도 나섰습니다. 1910년대 일이죠. 보성전문학교와 보성중·소학교 동덕여학교를 인수하고 다른 학교들도 지원했습니다. 교도들의 성미(誠米)가 자금원이었죠.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을 기회도 엿보다 1919년 3·1운동을 주도했습니다. 그가 비폭력을 내세운 것은 동학농민혁명과 갑진혁신운동의 희생을 두 번 다시 겪지 않으려는 생각이었을 겁니다.


⓵과 ⓶는 1922년 6월 5일 경운동 천도교당에서 엄수된 위령식. ⓷은 천도교당 밖을 가득 메운 조문객들. ⓸는 우이동 장지로 가는 운구행렬을 따르는 여학생들이 창경궁 앞을 지나는 모습이다. ⓶와 ⓸는 천도교 중앙총부 제공

3·1운동 전에 손병희가 화려한 쌍두마차를 타고 경성을 누볐다는 얘기는 유명합니다. 마치 옛날 서양의 왕이나 귀족 같았겠죠. 요정 출입도 해 많은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도 했답니다. 사치, 방탕한 생활에 젖었다기보다 일제의 눈을 피하려는 위장술이었다고 하죠. 손병희는 3·1운동 주모자로 옥에 갇혔을 때 중풍을 맞았습니다.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끝내 병을 이기지 못하고 발병 2년 만인 1922년 5월 19일 운명했죠. 동아일보는 이 파란만장한 거인의 타계 소식을 최초의 호외로 전했습니다. 지금 보시는 1922년 5월 19일자죠. 보통의 절반 크기로 운명 순간부터 일대기, 장례절차, 천도교의 미래까지 2개 면에 담았습니다. 숨진 지 2시간 만에 만들어 배포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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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기자 leej@donga.com

원문
孫秉熙(손병희) 氏(씨) 長逝(장서)

금일 오전 세시 샹츈원에서
의약이 무효로 셰상을 떠나

지난 십일 밤부터 신병이 더치어서 동대문 밧 상춘원 별장에서 치료 중이든 텬도교 뎨삼세 교주 손병희 『天道敎 第三世 敎主 孫秉熙』 씨는 작 십팔일 하오에 절망상태에 삐진 이후로 어제 밤 열시 전후에는 맥박도 다소간 평온한 듯하야 친척과 일반 좌우의 사람도 적이 마음에 희망을 두엇스나 원래가 회복키 어려운 병이라 의약의 효험이 업시 금 십구일 상오 세시에 마침내 서거하얏는대 향년이 륙십이세러라.

踏至(답지)하는 慰問客(위문객)、續發(속발)하는 電報(전보)
위독 후의 상춘원 내 혼잡

십□일 하오 두시에 손병희 씨의 병세가 아조 위독하야 절망의 상태에 이르럿다 하는 소식이 본보로 인하야 세상에 전하매 손 씨의 병실에는 사회 각 방면의 유지가 우중임도 불구하고 다수히 위문하야 상춘원 문전은 매우 복잡을 이루엇섯고 일변으로 중앙총부 직원은 디방 각 교구(敎區)와 기타 주요처에 선생이 위독』하다는 뎐보를 노아 병세가 심상치 아니한 것을 더욱 짐작하게 하얏더라.

遺言(유언)은 別無(별무)하얏다
림종 시 혼수샹태

감옥에서 어든 신병으로 사년 동안이나 신음 중이든 손병희 씨는 이제 맛침내 서거하얏는대 씨는 최후의 숨이 지기까지 자긔의 개인에 대하야서나 혹은 공사에 대하야서나 도모지 유언을 한 일이 업다 하며 이에 대하야 최린(崔麟) 씨는 말하되 『선생은 본래 셩질이 사후의 일을 말치 아니함으로 아모 유언도 업섯고 최후에는 의식을 일코 말을 못하얏스닛가 설혹 할 말슴이 잇셧다 하야도 할 수가 업섯슬 것이라 말하더라.

一縷餘望(일루여망)도 虛事(허사)
림종 시의 병상

손병희 씨의 병세는 십팔일 밤에 이르러 다소 안온한 맥이 나타남으로 집안에 모힌 사람들은 절망 중에도 일루의 희망을 부첫스나 오늘 새벽 령시반에 이르러 병세가 다시 변하야 맥이 불규측하고 천촉증이 이러나게 되얏슴으로 이제는 다시 회생치 못할 줄을 알고 친족과 그 교회 간부와 기타 좌우에 잇는 사람들이 모히어 마즈막으로 랭수라도 흘니어 너엇는대 두시반에 이르러는 아조 의식을 일케 되야 상오 삼시에 그만 절맥되얏는대 주치의(主治醫) 박종환(朴宗桓) 씨는 최후의 병상에 대하야 말하되 『원래 원긔가 조흔 고로 만히 끄른 세음이오 최후에는 페염으로 다시 심장마비가 이러나서 그만 운명되엿는대 오래 끌기는 하얏스나 의식이 명료치 못하얏슴으로 그다지 고통은 업섯소』하며 다년 주치하든 정지에 섭々한 눈물을 금치 못하더라.

葬儀(장의) 凖備(준비) 協議(협의)
렴습의 여부도 미뎡

손 씨의 장의에 대하야는 방금 텬도교 간부 간에서 협의 중인즉 오전 중에는 결뎡이 될 터이오 장의위원 기타 사무에 대하야도 방금 협의 중인대 위원은 물론 교회 간부와 주요 인물로 선뎡할 터이오 장의에는 아즉 미뎡의 일이라 할지라도 렴습『歛襲』을 폐하고 그대로 관에 너흘지도 모르겟다더라.

主喪(주상)은 現敎主(현교주)
박인호 씨로 결뎡

손병희 씨는 생전에 슬하에 아들이 업섯고 딸만 오형뎨가 잇스나 맛사위는 임의 세상을 떠나고 다음으로 사위는 정광조(鄭廣朝) 방뎡환(方定煥) 량씨가 잇스나 상주(喪主)가 업슴으로 그 교회 간부들은 긴급회의를 열고 현교주 박인호(朴寅浩) 씨가 주상)이 되기로 결뎡하얏다더라.

雨如淚(우여루)、淚如雨(루여우)
비애에 싸인 림종 시의 광경
애인 주취미의 목메인 설음

밤이 새이도록 혼수상태를 계속하는 중 간단 업시 맥박을 듯든 의사가 두시 삼십분 경에 이르러 이제는 할 수 업다 하는 듯이 얼골에 말할 수 업는 처참한 빗을 뛰우고 운명이 멀지 아니하얏다는 말이 묵어운 어조로 병상을 옹위한 사람들의 귀에 울니매 정리에 가리워 오히려 회생의 요행을 축수하든

가족들은 일시에 목이 맷치어 울고 교도들도 늣겨 우는 사람이 만흐며 부인과 여러 딸은 더욱 엇지할 줄 모르는 듯이 얼골을 가리우고 울고 끗흐로 어린 딸들은 철업시 목을 노와 울며 아버지를 부르고 손 씨가 출옥하야 병상에 누은 이후 하로 가치 간호를 하든 주취미(朱翠眉)는 운명하는 그의 이마를 두 손으로 집고 비오 듯하는 눈물이 손등 우에 뚝々 떠러지고 일반교도들의 압흔 가슴에서 소사나오는 우름이 긋지지 안이하야 적々한 실내에는 오즉 늣겨우는 우름소래가 창밧게 쏘다지는 비소래와 함께 한업시 처량하얏다.

이 광경 중에 고요히 운명을 맛치매 유해는 눈빗 가튼 이불 한 겹을 격하야 이 세상과 영결되고 소래를 삼키고 울든 우름이 참을 수 업시 터저나오고 창밧게 비발도 다시금 재웃처 눈물이 비인지 비가 눈물인지 알 수 업게 되얏다.

奮鬪生活(분투생활) 終幕(종막)의 日(일)
꼿 이운 상츈원에 슬푼 비소리
셰상을 영결한 텬도교의 어른

쳥주(淸州) 아전의 아들로서 더욱히 남의 서자(庶子)로 태어나 평생에 『아버지』 소리를 부르지 못하도록 가진 학대의 속에서 어린 몸이 자라나 십 세로 이십 세 전후에는 노름과 술 먹고 란봉 부리는 것으로 일을 삼다가 이십이 세 당시 동학(東學)에 입교하야 이래 사십 년 동안에 혹은 지목을 바다 동서로 외로운 자최를 숨기며 혹은 중국(中國)과 일본에 망명하야

일편단심이 오즉 동학을 위하야 활동하다가 갑진(甲辰)년에야 비로소 동학을 텬도교라 하고 경성에 도라와서 청텬백일의 아래에 자유로운 소리로 포덕텬하(布德天下) 광제창생(廣濟蒼生)을 부르짓게 되야 십여년을 두고 교회 안의 모든 일을 정돈한 후 삼작년 삼월을 긔약하야 동지 삼십이인으로 더부러 조선독립의 선언을 한 손병희 씨는 이제는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오 텬국의 백성이 되얏다. 낫키를 미천한 곳에 나엇고 놀기를 하류로 더부러 놀다가 민중의 모임인 동학에 참례하야 맛츰내 지도자가 되며 어려서부터 뼈에 맷친 뎍서(嫡庶)의 구별을 업시 하자고 주장하는 동시 조선에서 처음으로 머리를 깍자고 주장하고 실행한 손 씨의 일생을 이제 다시 도라볼 때에는 누구나

한결 가튼 분투에 놀나지 아니치 못할 것이다. 동학란이 이러나든 당시에 소위 량반을 제한 외에는 누구나 한 가지로 학대를 바덧다 하겟지만은 그중에도 남의 서자로 한 겹의 학대를 더 밧는 몸으로 끗々내 민중의 친구가 되고 그들을 위하야 진리를 말하며 그들을 위하야 로력한 손 씨는 과연 조선근대에 잇서々 민중(民衆)의 거인(巨人)이라 아니하고 무엇이라 하리오. 상츈원의 꼿은 임의 이울고 첫 여름비는 구슬피 오락가락하는데 이 민중의 거인은 영원히 잠들고 말앗다. 아지 못게라. 후원의 두견은 엇지하야 우는고.

葬禮(장례)와 官憲(관헌)의 態度(태도)
장식과 경찰당국의 의견

손병희 씨는 독립선언사건으로 삼년 징역의 판결 언도를 밧고 신병으로 복역뎡지 중에 잇섯슴으로 그 장례는 경찰당국에서 엇더케 할는지 이에 대하야 경긔도경찰부(京畿道警察部) 백상부장(白上部長)은 말하되 원래 유죄의 판결을 밧고 감옥에서 복역을 하다가 사망하면 감옥법에 따라서 그 유해를 가족에게 내여 주거나 또는 감옥에서 장사를 지내기도 하는 규정이 잇스나 손병희로 말하면

유죄판결을 밧은 몸이나 감옥에서 복역을 아니하고 자긔집에 잇다가 사망하얏슨즉 가족들이 가뎡의 규례로 장례를 지내는 데에는 별로 간섭할 필요가 업슬 뜻하나 만일 장식을 큰 규묘로 교회 장의례식으로 지낸다 하면 경무국과 감옥 뎐옥의 의견에 맛길 수밧게 업슬 듯하며 자가에서도 주의하는 것도 필요할 듯함니다. 그러나 조선인 사회의 동정이 잇다 하든지 또는 장례로 인하야 인심이 소동될 것을 념려하야 장식에 제재를 하려고는 생각지 아니하노라고 말하더라.

檢事局(검사국)의 意見(의견)
간셥이 업슬듯

이에 대하야 경성디방법원 모검사의 의견을 무른즉 『손병희가 판결이 확뎡되기는 경성복심법원에서 되엿스닛가 생전에는 복심법원 검사댱의 감시를 밧앗지마는 사후 장의에 대하야는 뎨삼자에 관한 일이닛가 간섭할 수 업슬 것이며 죄수가 죽은 후에 장식이나 제사에 대한 졔한규뎡은 대정 구년 십월에 총독부령 뎨일백륙십호로 발포되얏는대 그 규뎡 중 뎨칠조를 보면 유긔징역을 바든 죄수가 형별을 집행하는 중 죽은 후에 장식이나 제사나 추도회를 다수한 사람이 모히어 성대히 하는 것을 도지사가 치안유지에 방해가 된다고 인증하는 때에는 허가를 엇게 하고 제지할 수가 잇다 하엿스닛가 도지사가 특별히 간섭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교도의 마음대로 행하야도 아모 관계가 업다』고 말하더라.

今後(금후)의 天道敎(천도교)
분쟁이 잇는 즁에 스승의 부음
이 뒤에 텬도교는 엇더케 될가

륙십삼 년의 댱구한 력사가 잇고 만으로써 세우는 교도가 잇는 텬교회의 뎨삼세 교주 되는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 씨가 서거하얏다 함은 별항과 갓거니와 스승을 일흔 텬도교회의 장래는 과연 엇더할가. 이야말로 그 교회를 위하야 가장 중대한 문뎨이라 할 것이다. 이에 대하야 그 교회의 사정에 정통한 모씨는 말하되 조선에 잇서서 종교라 하면 신도가 뎨일 만흔 텬도교는 곳 순조선인으로 조직된 가장 큰 단톄이라. 손의암의 서거한 후에 그 교회의 장래가 엇더할가 함은 실로 중대한 문뎨인 동시에 누구나 경홀히 말하기도 어려운 바어니와 지난 사월 이래로 그 교회 안에 분요가 이러난 것은 세상이 다 아는 바이라.

당시 분요가 아즉도 가라안지 못하고 쌍방이 서로 합의치 못한 이때에 교회의 어룬 되는 손 씨가 서거함은 실로 그 교회에 당하야 중대한 일이라. 그 교회에도 교주 박인호(朴寅浩) 씨 이하 교도의게 신망 잇는 인물이 적지 아니한즉 손 씨의 생전에는 엇더케 지내엇던지 이후로는 서로 합하야 첫재는 교회를 위하고 둘재는 과거 몃십년 동안에 악형으로 세상을 떠난 수운(水雲) 해월(海月) 량 선생과 여러 동지를 생각하여서라도 잘 유지하여 갈 줄로 미드며 또한 그럿케 하여야 될 줄로 생각한다고 하더라.

聖師(성사)의 稱(칭)은 此(차)로 斷絶(단절)
본래가 삼세까지로 결뎡된 일
이후는 교주뿐으로 교도 통솔

텬도교주 손병희 씨가 서거함은 별항 보도와 갓거니와 그 교회에는 처음에 수운대신사『水雲大神師』로 비롯하야 해월신사『海月神師』 의암성사『義菴聖師』 등의 존칭이 잇셧는대 손의암이 서거한 이후에는 성사『聖師』라는 디위가 엇지 될가. 이에 대하야 중앙총부의 모씨는 말하되 이 문뎨는 별로 새로히 말할 것이 안니라. 우리 교에는 본래 텬디인『天地人』 삼세신성『三世神聖』의 존칭이 잇슬 뿐이오. 그 후로는 모다 교주라고만 일커를 것은 임의 뎡한 사실이오. 다시 의론할 문뎨도 아니라 하더라.

현대문
손병희 씨 타계



19일 오전 3시 상춘원에서
의약이 소용없이 세상을 떠나

지난 10일 밤부터 병세가 더해져서 동대문 밖 상춘원 별장에서 치료 중이던 천도교 제3세 교주 손병희 씨는 18일 오후에 절망상태에 빠진 이후로 밤 10시 전후에는 맥박도 다소간 평온한 듯하여 친척과 일반 좌우의 사람도 다소 마음에 희망을 품었으나 원래가 회복하기 어려운 병이라 의약의 효험이 없이 19일 오전 3시에 마침내 서거하였다. 향년 62세.

몰려드는 위문객, 연잇는 전보
위독한 뒤 상춘원 내 혼잡

18일 오후 2시에 손병희 씨의 병세가 아주 위독하여 절망 상태에 이르렀다는 소식이 본보에 실려 세상에 알려지자 손 씨의 병실에는 사회 각 방면의 유지가 비가 오는 중에도 불구하고 많이 위문하여 상춘원 문전은 매우 복잡하였고 한편으로 천도교 중앙총부 직원은 지방 각 교구와 기타 주요 기관에 선생이 위독하다는 전보를 쳐 병세가 심상치 않다는 점을 한층 짐작하게 하였다.

유언은 특별히 없었다
임종 때 혼수상태

감옥에서 얻은 신병으로 4년 동안이나 신음 중이든 손병희 씨는 이제 마침내 서거하였는데 그는 최후의 숨이 멈추기까지 자기 개인에 대해서나 혹은 공사에 대해서나 도무지 유언을 한 일이 없다 하며 이에 대하여 최린 씨는 『선생은 본래 성격이 사후의 일을 말하지 아니하므로 아무 유언도 없었고 마지막에는 의식을 잃어 말을 못하였으니까 설령 할 말씀이 있었다 해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가닥 희망도 허사
임종 때 병상
홀짝게임
손병희 씨의 병세는 18일 밤이 되자 맥박이 다소 안정되므로 집안에 모인 사람들은 절망 중에도 한 가닥 희망을 품었으나 19일 새벽 0시 반에 이르러 병세가 다시 변하여 맥박이 불규칙하고 가쁜 기침이 일어나게 되었으므로 이제는 다시 회생하지 못할 줄 알고 친족과 천도교 간부와 기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 마지막으로 냉수라도 흘려 넣었다. 오전 2시 반이 되자 아주 의식을 잃게 되어 오전 3시에 그만 맥박이 끊어졌다. 주치의 박종환 씨는 최후의 병상에 대하여 『원래 원기가 좋았기에 많이 끈 셈이오. 마지막에는 폐렴으로, 다시 심장마비가 일어나서 그만 운명하였는데 오래 끌기는 하였지만 의식이 명료하지 못하였으므로 그다지 고통은 없섰소』라며 여러 해 주치하여 정이 들었던 처지에 섭섭한 눈물을 멈추지 못하였다.

장례 준비 협의
염습 여부도 미정

손 씨의 장례에 대해서는 방금 천도교 간부들 사이에서 협의 중이며 오전 중에는 결정이 될 것이다. 장례위원 기타 사무에 대해서도 현재 협의 중인데 위원은 물론 천도교 간부와 주요 인물로 선정할 것이고 장례에는 아직 미정인 일이라고 해도 염습을 하지 않고 그대로 관에 넣을 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주상(主喪)은 현재 교주
박인호 씨로 결정

손병희 씨는 생전에 슬하에 아들이 없었고 딸만 5자매가 있지만 맏사위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다음 사위는 정광조 방정환 두 사람이 있으나 상주가 없으므로 천도교 간부들은 긴급회의를 열어 현재 교주 박인호 씨가 주상이 되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비 같이 쏟아지는 눈물, 눈물 같은 빗줄기
비애에 싸인 임종 때의 광경
애인 주취미 씨의 목매인 설움

밤이 새도록 혼수상태를 계속하는 중 간단없이 맥박을 듣던 의사가 2시 30분경에 이르러 이제는 할 수 없다 하는 듯이 얼굴에 말할 수 없는 처참한 빛을 띄우고 운명이 멀지 않았다는 말이 무거운 어조로 병상을 둘러싼 사람들의 귀에 울리자 정리 탓에 오히려 회생할 요행을 바라던 가족들은 일시에 목이 막혀 울고 교도들도 흐느껴 우는 사람이 많으며 부인과 여러 딸은 더욱 어찌할 줄을 모르는 듯이 얼굴을 가리고 울고 끝으로 어린 딸들은 철없이 목을 놓아 울며 아버지를 부르고 손 씨가 출옥하여 병상에 누운 이후로 하루 같이 간호를 하든 주취미 씨는 운명하는 그의 이마를 두 손으로 짚고 비 오듯 하는 눈물이 손등 위에 뚝뚝 떨어지고 일반 교도들의 아픈 가슴에서 솟아나오는 울음이 그치지 않아 적적한 실내에는 오직 흐느껴 우는 울음소리가 창밖에 쏟아지는 빗소리와 함께 한없이 처량하였다.

이 광경 중에 고요히 운명한 유해는 눈빛 같은 이불 한 겹을 사이에 두고 이 세상을 영영 작별하고 소리를 삼키고 울던 울음이 참을 수 없이 터져 나오고 창밖에 빗발도 다시금 쏟아져 눈물이 비인지 비가 눈물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분투생활 종막의 하루
꽃 시든 상춘원의 슬픈 빗소리
세상을 영결한 천도교의 어른

청주 아전의 아들로 더구나 남의 서자로 태어나 평생 『아버지』 소리를 부르지 못하도록 갖은 학대 속에서 어린 몸이 자라나 10세부터 20세 전후에는 노름과 술 마시고 난봉 부리는 것으로 일을 삼다가 22세 때 동학에 입교하여 이후 40년 동안에 혹은 수배를 받아 동쪽으로 서쪽으로 외롭게 몸을 숨기며 혹은 중국과 일본에 망명하여 일편단심 오직 동학을 위하여 활동하다가 1904년에야 비로소 동학을 천도교라고 하고 경성에 돌아와서 청천백일 아래에 자유로운 소리로 ‘포덕천하 광제창생’을 부르짖게 되어 10여 년을 두고 교회 안의 모든 일을 정돈한 후 3년 전 3월을 기하여 동지 32명과 함께 조선독립의 선언을 한 손병희 씨는 이제는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고 천국의 백성이 되었다.

날 때는 미천한 곳에서 태어낫고 놀 때는 하류인생들과 함께 놀다가 민중의 모임인 동학에 참여하여 마침내 지도자가 되었으며 어려서부터 뼈에 맺힌 적서의 차별을 없애자고 주장하는 동시에 조선에서 처음으로 단발을 하자고 주장해 실행한 손 씨의 일생을 이제 다시 돌아볼 때 누구나 한결같은 분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동학란이 일어나던 당시에 이른바 양반을 제외하고 누구나 똑같이 학대를 받았다고 하겠지만 그중에도 남의 서자로 한 겹의 학대를 더 받는 몸으로 끝끝내 민중의 친구가 되고 그들을 위하여 진리를 말하며 그들을 위하여 노력한 손 씨는 과연 조선 근대에 있어서 민중의 거인이라고 하지 않으면 무엇이라 하겠는가. 상춘원의 꽃은 이미 기울고 첫 여름비는 구슬피 오락가락하는데 이 민중의 거인은 영원히 잠들고 말았다. 알지 못할세라. 후원의 두견새는 어찌하여 우는가.

장례와 관헌의 태도
장례 방식과 경찰당국의 의견

손병희 씨는 독립선언사건으로 3년 징역의 판결을 받고 신병으로 집행정지 중이었으므로 장례는 경찰당국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이에 대해 경기도 경찰부 시라카미 부장은 『원래 유죄 판결을 받고 감옥에서 복역하다가 사망하면 감옥법령에 따라 그 유해를 가족에게 건네 주거나 감옥에서 장사를 지내기도 하는 규정이 있지만 손병희로 말하면 유죄 판결을 받은 몸이지만 감옥에서 복역을 하지 않고 자기 집에 있다가 사망하였으므로 가족들이 가정의 예법으로 장례를 지내는데 별로 간섭할 필요가 없을 듯하지만 만약 장례를 큰 규모로 천도교 장례식으로 지낸다고 하면 경무국과 감옥 간수장의 의견에 맡길 수밖에 없을 듯하며 자택에서도 주의하는 것도 필요할 듯합니다. 그러나 조선인 사회의 동정이 있다 하든지 또는 장례로 인해 인심이 소란해질 것을 염려하여 장례를 제재하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검사국의 의견
간섭이 없을 듯

이에 대해 경성지방법원 모검사의 의견을 물으니 『손병희가 판결이 경성복심법원에서 확정되었으니까 생전에는 복심법원 검사장의 감시를 받았지만 사후 장례에 대해서는 제3자에 관한 일이니까 간섭할 수 없을 것이며 죄수가 죽은 후에 장례나 제사에 대한 제한규정은 1920년 10월에 총독부령 제160호로 발효되었는데 그 규정 중 제7조를 보면 유기징역을 받은 죄수가 형벌을 집행하는 도중 죽은 후에 장례나 제사나 추도회를 다수 사람이 모여 성대하게 치르는 것을 도지사가 치안유지에 방해가 된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허가를 얻게 하고 제지할 수가 있다고 하였으니까 도지사가 특별히 간섭하지 않는 경우에는 교도의 마음대로 해도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천도교
분쟁이 있는 가운데 스승의 부음
향후 천도교는 어떻게 될까

63년의 오랜 역사가 있고 수만 명을 헤아리는 교도가 있는 천도교의 제3세 교주되는 의암 손병희 씨가 서거하였다는 소식은 위의 기사와 같고 스승을 잃은 천도교회의 장래는 과연 어떻게 될까. 이야말로 그 교회에는 가장 중대한 문제라 할 것이다. 이에 대하여 그 교회의 사정에 정통한 모 씨는 『조선에 있어서 종교라고 하면 신도가 제일 많은 천도교는 곧 순 조선인으로 조직된 가장 큰 단체이다. 손 의암이 서거한 뒤에 그 교회의 장래가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은 실로 중대한 문제인 동시에 누구나 경솔하게 말하기도 어려운 일이며 지난 4월 이래 그 교회 안에 분란이 일어난 것은 세상이 다 아는 바이다. 당시 분란이 아직도 가라앉지 못하고 쌍방이 서로 합의하지 못한 이때에 교회의 어른 되는 손 씨가 서거한 것은 실로 그 교회에게는 중대한 일이다. 그 교회에도 교주 박인호 씨 이하 교도에게 신망 있는 인물이 적지 않으므로 손 씨의 생전에는 어떻게 지냈던지 간에 이후로는 서로 합하여 첫째는 교회를 위하고 둘째는 과거 몇 십 년 동안에 악형으로 세상을 떠난 수운 해월 두 선생과 여러 동지를 생각해서라도 잘 유지해 갈 줄로 믿으며 또한 그렇게 해야 될 줄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성사의 존칭은 이로써 단절
본래가 3세까지로 결정됐던 사안
이후는 교주만으로 교도 통솔

천도교주 손병희 씨가 타계한 것은 별도 보도와 같으며 그 교회에는 처음에 수운대신사를 비롯하여 해월신사, 의암성사 등의 존칭이 있었으나 손 의암이 서거한 이후에는 성사라는 지위가 어떻게 될까. 이에 대해 중앙총부의 모 씨는 『이 문제는 별로 새롭게 말할 것이 아니다. 우리 교에는 본래 천지인, 3세신성의 존칭이 있을 뿐이다. 그 후로는 모두 교주라고만 일컬을 것은 이미 정한 사실이다. 다시 의논할 문제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헤럴드POP=천윤혜기자]배우 박희순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언더커버’(가제)로 돌아온다.

22일, 소속사 킹콩 by 스타쉽 측은 “배우 박희순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언더커버’(가제)(극본 김바다/연출 김진민)에 출연한다. ‘최무진’ 역으로 강렬한 모습을 보여줄 박희순에게 많은 기대 부탁드린다”라고 밝혔다.

‘언더커버’(가제)는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밝히기 위해 조직의 언더커버가 되어 경찰로 잠입한 지우(한소희 분)의 숨 막히는 복수극과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냉혹한 진실을 그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다. 특히 MBC ‘개와 늑대의 시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인간수업’ 등을 연출한 김진민 감독의 차기작으로 더욱 화제를 모으고 있는 작품이다.

극 중 박희순이 맡은 ‘최무진’은 국내 최대 마약 조직 동천파의 보스로, 아버지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윤지우를 조직에 들여 언더커버로 만들어 주는 인물. 그는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무뚝뚝함과 냉철한 카리스마의 소유자다. 박희순은 액션 느와르 장르에 걸맞은 화려한 액션 연기뿐만 아니라 무게감 있는 연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박희순은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자랑해왔다. 그는 영화 ‘남한산성’, ‘1987’, ‘마녀’ 등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입증, 고밀도 열연으로 관객들에게 강한 임팩트를 남겼다. 더불어 JTBC ‘아름다운 세상’의 따뜻하고 정의감 넘치는 ‘박무진’ 역으로 안방극장에 감동을 선사하기도. 이에 믿고 보는 배우 박희순이 ‘언더커버’(가제)를 통해 보여줄 활약에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박희순을 비롯해 한소희, 김상호, 이학주, 장률 등이 출연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언더커버’(가제)는 오직 넷플릭스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사진출처 : 킹콩 by 스타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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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이동우 기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제2차 국정원·검찰·경찰 개혁전략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더불어민주당이 또 '마이크 사고'에 울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야당 의원을 비난하는 발언을 해 '뒷담화' 논란에 휘말렸다. 21대 국회 출범 이후로만 이인영 통일부장관, 진성준 의원에 이어 벌써 세 번째다.

추 장관은 이날 법사위 전체회의가 정회한 뒤 옆자리에 앉은 서욱 국방부 장관이 "많이 불편하시죠"라고 하자 "어이가 없다. 저 사람(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은 검사 안 하고 국회의원 하기를 참 잘했다, 죄 없는 사람 여럿 잡을 거 같다"고 말했다.

직접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정회 직전 질의자가 법사위 야당 간사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인 점을 고려하면 해당 발언은 김 의원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김 의원은 검사 출신으로 2012년 정계에 입문했다.

이 발언이 생중계되며 야당 의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앞서 '소설 쓰시네' 발언 등 과격한 언행이 또다시 지적됐다. 이에 추 장관은 "원만한 회의 진행을 위해 유감스럽다"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검사 출신 소병철 민주당 의원도 "추 장관이 사과한 것을 너그럽게 이해해달라는 말을 간곡히 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추 장관은 국민에게 피로감 주고 분노하게 하는 장관"이라며 "그럼에도 소 의원이 유감 표시하고 이해해달라고 하니 저 개인적으로는 참으로 모욕적이지만 이해하도록 하겠다"고 말해 일단락 됐다.
부동산대책 쏟아냈는데…진성준 "(집값) 그렇게 해도 안 떨어져" 논란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민주당이 마이크 사고로 속내를 드러내 곤욕을 겪은 것은 여러 번이다. '7.10 부동산 대책' 이후 집값 논란이 한창일 당시 방송에 출연한 진성준 민주당 의원은 '집값 안 떨어진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각계의 질책을 받았다.

진 의원은 지난 7월16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토론을 마치고 패널들과 대화를 나누다 이런 실수를 저질렀다. 김현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이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는 게 국가 경제에 너무 부담되기 때문에 그렇게 막 떨어뜨릴 수가 없다"고 말하자 진 의원은 "그렇게 해도 안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비대위원이 "여당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이 그렇게 얘기하시면 국민들은 어떻게 하느냐"고 받아치자, 진 의원은 "부동산 뭐 이게, 어제오늘 일입니까"라고 답했다. 하지만 진 의원은 조금 전 토론에서는 정부의 부동산대책이 집값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 주장했다.

발언이 알려지며 진 의원의 이름과 '3040 문재인에 속았다'는 키워드가 포털사이트에 수일이나 오르내렸다. 각계 비판이 계속되자 진 의원은 "나의 발언은 집 값 떨어지는 것이 더 문제라고 주장하면서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대책의 발목을 잡으려는 '집값 하락론자'들의 인식과 주장에 대한 반박"이라고 해명했다.
이인영-김수현의 대화, 관료 비판 "엉뚱한 짓 한다"

/사진=뉴시스
지난해 5월에는 당시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가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과 국회에서 회의를 하다 정부 관료들의 복지부동을 비판한 사실이 녹음돼 논란이 됐다. 이 원내대표는 이날 아침 당·정·청 회의 시작 전 옆자리에 앉은 김 실장에게 "정부 관료가 말 덜 듣는 것, 이런 건 제가 다 도맡아서 하겠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김 실장은 "그건 해달라. 진짜 나도 (정권 출범) 2주년이 아니고 마치 4주년 같다"고 답했다. 그러자 이 원내대표는 "단적으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그 한 달 없는 사이에 자기들끼리 이상한 짓을 많이 한다"고 관료들의 태도를 비판했다.

김 실장은 "지금 버스 사태가 벌어진 것도 (정부 관료들 때문)"이라고 했고, 이 원내대표는 "잠깐만 틈을 주면 (관료들이) 엉뚱한 짓들을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당시 주52시간제 전면 시행을 앞두고 지자체 버스노조 총파업 예고한 것의 책임을 관료에 돌린 것이다. 야당은 '레임덕' '공무원에 대한 갑질' 등 비판을 내놨지만, 청와대와 여당이 정부 고위 관료들에게 보내는 의도된 경고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이동우 기자 canelo@mt.co.kr
2016년 10월 31일 이전 출고 차량 대상
[파이낸셜뉴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는 등록 후 4년이 경과된 메르세데스-벤츠 차량 보유 고객에게 가을철 안전 운전을 위한 무상 점검 서비스 및 순정부품 할인 등의 혜택을 제공하는 '2020 클래식 캠페인'을 이달 21일부터 다음달 31일까지 전국 공식 서비스센터에서 진행한다.

이번 캠페인을 통해 2016년 10월 31일 이전 출고된 메르세데스-벤츠 차량 보유 고객을 대상으로 엔진오일, 브레이크 패드 및 디스크, 트랜스미션 오일 등 주요 부품의 전문 테크니션 점검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순정부품1 및 액세서리 & 컬렉션2을 20% 할인된 가격에 판매한다.



또 대상 차량 고객에게는 커넥티비티 기능이 탑재되기 이전의 모델에서도 블루투스 연결 장치와 스마트폰 연동을 통해 차량 관리 커넥티드 서비스를 사용 가능하게 하는 '메르세데스 미 디지털 어시스턴트' 무상 장착 서비스가 제공된다. 출고 후 5년 또는 10년 경과 차량의 유상 수리 진행 고객에게는 차량 관리 용품, 차량용 공기 청정기 등의 별도 사은품이 선착순으로 제공한다.

이와함께 캠페인 기간 동안 메르세데스-벤츠 중고차 구매 이후 처음 공식 서비스센터를 방문하는 모든 고객에게는 메르세데스-벤츠 차량 관리 용품이 증정되며, 메르세데스-벤츠 액세서리 & 컬렉션을 25만원, 50만원, 100만원 이상 구매하는 전 고객을 대상으로는 텀블러, 우산, 트롤리 백 등의 사은품이 제공된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김지섭 대표이사 사장 직무대행은 "가을철을 맞아 메르세데스-벤츠 브랜드를 사랑해 주시고 차량을 오랜 기간 보유하고 계신 고객분들이 차량을 안전하고 소중하게 유지 및 관리 할 수 있도록 이번 서비스 캠페인을 마련했다"며 "메르세데스-벤츠는 고객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차량 출고 시부터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앞으로도 고객분들이 최상의 차량 관리와 운전 환경을 누릴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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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nical73@fnnews.com 김병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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